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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 최승희

최승희, [불꽃], 자음과모음, 2006.(97~107쪽) 가와바다 야스나리 일본일좌담회라는 것을 [모던 일본]이 개최했을 때, 여류 신진 무용가 중에 일본 제일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서양무용에는 최승희가 될 것이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그 좌담회는 신년 정월다운 분위기를 느끼고자 하는 애교에 불과한 것이었다. 진실한 비평회는 아니었다. 또한 한마디로 여류 신진 무용가라고 하더라도 십 대의 인물도 있고 삼십에 가까운 사람도 있다. 그 각각 세대는 무용의 경향이 서로 다르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독립한 것이냐, 스승의 문하에 있는 것이냐 등의 여건에 따라서 그 평가도 동일하지 않다. 특히 비평의 표준이 혼잡한 우리 무용계에서 그 예술적 재능의 우열을 이것저것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

소나기

황순원 단편선, [독 짓는 늙은이], 문학과지성사, 2018(1쇄 2004) (14~16쪽)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주는 척 후딱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너희 예서 뭣들 하느냐.” 농부 하나가 억새풀 사이로 올라왔다. 송아지 등에서 뛰어내렸다. 어린 송아지를 타서 허리가 상하면 어쩌느냐고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나룻이 긴 농부는 소녀 편을 한 번 훑어보고는 그저 송아지 고삐를 풀어내면서,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