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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삶을 조직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매튜 홀, [식물 사람 Plants as Persons](유기쁨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4. (297~ 303쪽) 다시 말하지만, 개별 식물, 식물 종, 그리고 식물 생태계에 행해지는 해악을 줄이는 것과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행해지는 해악을 줄이는 것 사이의 연결은 명백하다. 우리는 식물 이용을 근본적으로 검토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한 후, 식물의 필요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 생물권에 다른 주체와 목적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인간 활동에 제한을 요구한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나 생물 다양성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이러한 필요와 목적을 침해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식물 개체, 종, 그리고 군집에 대..

정결한 손가락

방현석, [범도]1, 문학동네, 2023. (8~13쪽) 안중근이 가지고 온 단총은 38구경 리볼버였다. 미국에 갔던 백무아가 그에게 가져다준 것과 같은 기종이었다. 단총을 들고 사냥에 나서는 멍청한 포수는 없다. 안은 단총을 익히려 온 것이었다. 농장에서 기다리는 인부들을 위해 그들은 국거리가 될 만한 붉은 사슴 한 마리를 먼저 잡기로 했다. 붉은 사슴은 녹각과 사향의 값은 없어도 체장이 크고 육질이 좋아 인부들이 좋아했다. 범도는 일격으로 체장 육 척에 사십 관은 너끈하게 나가는 붉은 사슴을 주저앉혔다. 안중근은 리볼버의 방아쇠를 두 번이나 당겼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단총으로 저격할 거리가 아니었다. 범도가 오기 전까지 연해주 최고의 명사수로 꼽힌 안중근답게 단총도 금방 손에 익혔다. 하지만 열 보를..

묘비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9~10쪽)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문득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로 자작자작 물이 밟..

그게 정말 마지막 인사일순 없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24~29쪽) 그리고 그 폭염의 밤, 아스팔트의 열풍을 맞으며 텅 빈 집으로 걸어 올라와 찬물 샤워를 하는 내가 있다. 밤마다 위아래 집과 옆집에서 에어컨을 켜기 때문에, 실외기들이 토해내는 뜨거운 바람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으려면 베란다 문과 창문들을 모두 닫아야 한다. 밀폐된 습식 사우나 같은 거실에서, 방금 끼얹은 냉수의 서늘함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거기 올려놓은, 여전히 수신인이 정해지지 않은 유서를 봉투째 짖어버린다. 처음부터 다시 써. 그건 언제나 옳은 주문이다. 처음부터 나는 다시 쓴다.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비 오듯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다시 찬물 샤워를 하고 책상으로 돌아온다. 조금 전에 쓴 형편없는 것을 다시 찢..

남부럽지 않은 삶을 위해

이현정, [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21세기북스, 2023(2022 1쇄) (174~ 181쪽)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은 삶을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본적으로 내 삶의 주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삶의 중심에 두는 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 저렇게 되지? 나는 어떻게 해야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와 같이 타인의 기준과 욕망에 삶의 조건을 두는 것..

춤꾼 최승희

최승희, [불꽃], 자음과모음, 2006.(97~107쪽) 가와바다 야스나리 일본일좌담회라는 것을 [모던 일본]이 개최했을 때, 여류 신진 무용가 중에 일본 제일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서양무용에는 최승희가 될 것이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그 좌담회는 신년 정월다운 분위기를 느끼고자 하는 애교에 불과한 것이었다. 진실한 비평회는 아니었다. 또한 한마디로 여류 신진 무용가라고 하더라도 십 대의 인물도 있고 삼십에 가까운 사람도 있다. 그 각각 세대는 무용의 경향이 서로 다르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독립한 것이냐, 스승의 문하에 있는 것이냐 등의 여건에 따라서 그 평가도 동일하지 않다. 특히 비평의 표준이 혼잡한 우리 무용계에서 그 예술적 재능의 우열을 이것저것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

소나기

황순원 단편선, [독 짓는 늙은이], 문학과지성사, 2018(1쇄 2004) (14~16쪽)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주는 척 후딱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너희 예서 뭣들 하느냐.” 농부 하나가 억새풀 사이로 올라왔다. 송아지 등에서 뛰어내렸다. 어린 송아지를 타서 허리가 상하면 어쩌느냐고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나룻이 긴 농부는 소녀 편을 한 번 훑어보고는 그저 송아지 고삐를 풀어내면서,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