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452

예링 도서관

조금주,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 도서출판 나무연필, 2017. ‘덴마크의 예링 도서관’ 덴마크 북부의 노르휠란주 예링에 있는 쇼핑몰 메트로폴. 이곳 2층에는 예링 도서관이 있다. 통상적으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들은 독리적인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데, 예링 자치구는 독특하게도 40개 상점이 입주해 있는 이 쇼핑몰과 30년 장기 임대 계약을 맺고 이곳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경우다. 새로 도서관을 건립한다면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신축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필요할 텐데, 장기 임대 방식은 재정 부담을 덜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많은 쇼핑몰이 그러하듯, 메트로폴도 도심 한복판에 있으며 유동 인구도 많고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용자가 도서관에 찾아오기를 기..

고향집을 허물면서

목성균, [누비처네], 2010, 연암서가 ‘고향집을 허물면서’ 잠실로 쓰던 헛간에 세간을 전부 옮겨 놓고 나자 하루해가 설핏했다. 둘째와 막내는 돌아가고 나는 안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 포클레인이 집을 헐러 오기로 되어 있기도 했지만 나는 내일이면 허물어질 이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다. 세간을 비워 낸 빈집은 마치 공연을 끝내고 장소를 옮겨 가기 위해서 내부를 비워 낸 서커스단의 빈 천막처럼 썰렁했다. 기우는 늦가을 엷은 저녁 햇살이 아쉬운 듯 마루 끝에 잠시 머물렀다. 마음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서성거렸다. 세간이래야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가지고 온 낡은 장롱을 비롯해서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옹기와 사기들이 전부지만, 우리 식구들의 기쁜 웃음과 허망한 한숨이 밴..

산읍 소묘

목성균, [누비처네], 2010, 연암서가 ‘산읍 소묘’ 연풍. 얼마나 풍족한 고을이면 이름마저 연풍이냐고 할지 몰라서 말씀드리지만 연풍은 문경새재 아래 있는 기름진 들판도 변변치 못한 궁벽한 산골이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연풍 현감은 울고 왔다가 울고 갔다고 한다. 올 때는 하도 궁벽한 산골이라 기가 막혀 울고, 갈 때는 잣죽 맛을 못 잊어서 울었다고 한다. 현감은 십중팔구 도임지에서 가렴주구부터 궁리했기 쉽다. 벼슬 길을 높여 줄 권문이나 세도가에 줄을 댈 뇌물 마련 때문이다. 한데 쥐어짜 보아야 쥐뿔도 거둬들일 게 있어 보이지를 않으니 ‘이제 내 벼슬길은 이 산골짜기처럼 꽉 막혔구나’ 하고 울었기 십상이다. 귀양지는 아니라 해도 내가 보기에도 막다른 벼슬길인 좌천지쯤은 되어 보인다. 잣죽이 얼마..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

황우창,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 오픈하우스, 2016. 황우창 ᆢ KBS 클래식FM 「세상의 모든 음악」 작가, CBS FM 「황우창의 월드뮤직」, MBC FM4U 「뮤직스트리트 3부」 진행자로 월드뮤직 전문 방송인이 되었고, 월드뮤직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음악과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알아가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음악과 와인, 그리고 사람을 좋아한다.

항생제 내성의 행로

마크 제롬 월터스, [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 (이한음 옮김), 책세상, 2020. Mark Jerome Walters: 대학에서 언론학과 수의학을 전공했으며, 전염병의 기원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언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2003년 [Six Modern Plagues - and How We Are Causing Them] 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항생제 내성의 행로’ 홀리가 DT104에 감염되기 몇 년 전에 세 번째로 살모넬라 전염병이 영국을 휩쓸었다. 3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세 번씩이나 살모넬라 전염병이 돈 것이다. 살모넬라균이 유독 영국이나 스코틀랜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영국의 전염병 감시 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자, 뭘 써야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 소설가](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6 ‘자, 뭘 써야 할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은 ‘초기 쪽이 좋다’는 게 일단 통상적인 정설입니다. 나도 그의 작품 중에서는 처음 두 편의 장편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그리고 닉 애덤스가 나오는 초기 단편소설을 가장 좋아합니다. 거기에는 숨을 헉 삼킬 만큼 멋진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기 작품으로 들어가면 잘 쓰기는 잘 썼지만 소설로서의 잠재력은 얼마간 떨어졌고 문장에서도 이전만큼의 선명함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건 역시 헤밍웨이라는 사람이 소재에서 힘을 얻어 스토리를 써나가는 유형의 작가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 소설가](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6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 나는 일반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김히 일반론을 말하게 해주신다면, 일본에서는 그다지 보통이 아닌 것, 남들과 다른 것을 하면 수많은 네거티브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일단 틀림이 없겠지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좋든 나쁘든 조화를 중시하는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체질의 문화를 가졌다는 것도 있고, 문화의 일극 집중경향이 강하다는 것도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프레임이 공고해지기 쉽고 권위가 그 힘을 휘두르기 쉬운 것입니다. 특히 문학에서는 전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전위냐 후위냐’ ‘우파냐 좌파냐’ ‘순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라는 좌표축에 따라 작품이나 작가의 문학적 위치가 세세하게 도표..

기행문

이태준, [문장강화], 범우문고 129, 범우사, 2015(전자책 발행) 이태준(1904~ 미상): 한국의 소설가. 강원도 철원군 출신으로 본명은 이규태. 호는 상허, 상허당주인. 소설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일명 조선의 모파상이란 별칭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근대 단편 소설의 완성자라고 불리낟. 문장가로서도 유명하다. ‘시에는 정지용, 문장에는 이태준’이라 일컬어졌다. 이태준은 자신의 저서 [문장강화]에서 주장한 일물일어설에 따라 소설을 썼다. 실제 이태준의 소설은 2020년대에 와서 읽어도 누가 따로 설명하지 않는 한, 1930년대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만큼 문장과 수성이 현대 소설과 비슷하다.게다다 이오덕 선생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전형이라고 칭찬했듯 깔끔한 표현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장가 중 하나였다..

일기

이태준, [문장강화], 범우문고 129, 범우사, 2015(전자책 발행) 이태준(1904~ 미상): 한국의 소설가. 강원도 철원군 출신으로 본명은 이규태. 호는 상허, 상허당주인. 소설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일명 조선의 모파상이란 별칭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근대 단편 소설의 완성자라고 불린다. 문장가로서도 유명하다. ‘시에는 정지용, 문장에는 이태준’이라 일컬어졌다. 이태준은 자신의 저서 [문장강화]에서 주장한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에 따라 소설을 썼다. 실제 이태준의 소설은 2020년대에 와서 읽어도 누가 따로 설명하지 않는 한, 1930년대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만큼 문장과 수성이 현대 소설과 비슷하다. 게다가 이오덕 선생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전형이라고 칭찬했듯 깔끔한 표현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장..

삼국시대의 아랍 바람

[뿌리깊은 나무] (1976년 3월, 창간호) 이용범, ‘삼국 시대의 아랍 바람’ ... 옛날 한반도에 파고 들어온 아라비아의 사치한 상품은 유리그릇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옛 역사 연구에 바탕 자료가 되는 [삼국사기]에는 그들의 손을 거쳐야만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고급 상품의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통일 뒤의 신라 귀족사회는 농민의 피땀 위에 걷잡을 수 없는 사치와 허영에 들떠, 통일 전의 굳센 기질과 부지런하고 소박한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같은 사치와 허영에서 일어나는 경제의 혼란을 막으려고 신분과 계층에 따라서 사용을 금하거나 제한했던 사치품이 있었다. 공작, 비취모, 슬슬, 답둥, 구유, 대모, 자단 같은 우리 눈에는 전혀 낯선 이름의 물품들이다. 몇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