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452

돼지 구이를 논함

2020.7.18(토) 찰스 램, [찰스 램 수필선](김기철 번역), 문예출판사, 1976. 찰스 램(Charles Lamb, 1775~1834) : 영국의 수필가이자 시인, 필명 엘리아. [엘리아 수필집]은 영국 수필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돼지 구이를 논함”(1) 어느 날 아침 돼지치기 호티란 사람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돼지에게 먹일 도토리를 주워오려고 숲속으로 가면서 오막살이집을 큰 아들인 보보에게 지키라고 했는데, 그 녀석이 아주 칠뜨기여서 고 또래의 아이 녀석들이 좋아하는 불장난을 하다 불똥을 짚단에 튀게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불이 확 퍼져, 그 알량한 오두막집을 홀딱 태워먹으니, 결국 몇 줌 안되는 재만 남게 되었다. 그 오두막(건물이라고는 하지만 노아의 홍수 이전의 한심스런 임시 움막쯤..

건지 섬의 문학회

2020. 7.12(일) 매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신선해 옮김), 비전비엔피, 2018. 아멜리아(Amelia)가 줄리엣(Juliet)에게 2월 18일 친애하는 애슈턴 양, 저의 염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줘서 고마워요. 어젯밤 문학회 모임에서 당신의 칼럼 이야기를 했어요. 칼럼에 찬성한다면 자신이 읽은 책과 독서에서 찾은 즐거움에 대해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내라고 제안했고요.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문학회의 회장인 이솔라 프리비가 조용히 하라며 의사봉을 두드릴 정도였답니다(하긴 이솔라는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의사봉 두드리는 덴 선수죠). 곧 당신에게 편지가 많이 갈 거예요. 당신이 쓸 칼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문학회의 설립 배경은 도시(Dawse..

북클럽의 시작

2020. 7.11(토) 매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신선해 옮김), 비전비엔피, 2018. 도시(Dawsey)가 줄리엣(Juliet)에게 1월 31일 친애하는 애슈턴 양, 보내주신 책이 어제 도착했습니다! 참 친절한 분이군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세인트피터포트 항구에서 일합니다. 배에서 짐을 내리는 일이지요. 그래서 휴식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버터 바른 빵과 진짜 차를 맛볼 수 있고 이제 당신에게 받은 책까지 있으니 이거야말로 축복입니다. 표지가 딱딱하지 않아서 어딜 가든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물론 너무 빨리 읽지 않게 조심할 겁니다. 찰스 램의 초상화도 생겼으니 이 또한 소중한 일입니다. 그는 머리숱이 많았군요, 그렇죠? 물론 당신..

“1920년대 상해”(8)

2020.7.5(일) 안재성, [박헌영 평전], 실천문학사, 2009. 동경으로 건너간 지 두 달 만인 1920년 11월, 박헌영은 상해로 가는 밀항선을 탔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일본에 머물러야겠지만 독립운동을 위해서라면 상해로 가는 게 옳기도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자리 잡고 있던 상해는 민족주의, 공산주의 할 것 없이 항일운동가들의 해외 집결소나 마찬가지였다.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일단 상해에서 항일조직에 가담하고 다시 국내에 돌아오는 게 보통이었다. 중국 대륙의 입구이던 동양 최대의 항구도시 상해는 제국주의 침략의 관문으로 전락해 있었다. 황포강 부두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중세식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서양인들을 맞이했다. 시내 중심가도 여러 제국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공 조계와 프랑스가 직할하는..

"1920년대 상해" (7)

2020.7.4(토) “1920년대 상해”(7) 이흥기, [신채호&함석헌/ 역사의 길, 민족의 길], 김영사, 2013. 북경에서 신채호는 1917년 과 1919년 2월 에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서명했다. 그리고 1919년 3월 고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만세 운동을 보면서 ‘민중'의 힘을 느끼고 상해로 옮겨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임시 정부 수립에 나섰다. 임시 의정원을 구성하는 초기 단계부터 주축으로 참여한 신채호는 임시 정부의 국무총리를 이승만으로 하자는 안에 결사반대하고 자신은 무장 투쟁론자 박용만을 후보로 천거했다. 이승만이 그해 2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청원한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승만이 국무총리로 하는 안이 통과되고, 이에 격분을 참지 못한 신채호는 ..

"1920년대 상해"(6)

2020.6.28(일) 김구, [백범일지] (도진순 엮어 옮김), 돌베개, 2005. 민국 2년(1920, 45세), 아내가 아들 인을 데리고 상해로 왔다. 어머님은 내가 중국에 온 뒤에도 장모와 같이 황해도 동산평에 계시다가, 장모가 세상을 떠나자 민국 4년(1922, 47세) 상해로 건너와 오랜만에 함께 가정을 이루었다. 그해 8월 둘째 신이가 태어났다. 상해에서 함께 가정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아, 민국 6년(1924) 1월 1일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둘째 신을 낳은 후, 몸도 채 튼튼치 못한데 2층에서 세숫대야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층계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후 늑막염이 폐병이 되어 고생하다 상해 보륭의원에서 진찰을 받고, 서양 의료시설을 갖춘 홍구 폐병원으로 옮겼다...

"1920년대 상해"(5)

2020.6.27(토) 김구, [백범일지] (도진순 엮어 옮김), 돌베개, 2005. (1919년 3월) 안동현을 떠난 지 4일 후, 나는 무사히 상해 포동 부둣가에 도착하였다. 안동현에서 얼음이 쌓인 것을 보았는데, 상해의 불란서 조계지에는 가로수에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안동현에서는 추위로 고생을 하였는데, 상해에서는 등과 얼굴에 땀이 났다. 일행과 같이 동포의 집에서 방바닥에 담요만 깔고 잠을 자고, 다음날부터 황해도의 김보연군이 찾아와 함께 살게 되었다. 김군의 안내로 밤낮 그리던 이동녕 선생을 찾아갔다. 1910년 양기탁의 사랑방에서 뵈었던 모습에 비하면, 근 10년 동안 고생을 많이 겪으신 탓인지 팽팽했던 얼굴에 주름살이 잡혀 있었다. 서로 악수하고 나니 감개무량하여 할 말을 잊었다. 당시 상..

낭독 겨울 - 17

2020. 6.26(금)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이세진 옮김, 2019, 청미) 겨울 3월 18일 금요일 문서를 좀 정리해야겠다. 이런저런 종이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내가 죽으면 애들은 아무것도 못 찾을 것이다. 르네가 죽었을 때에도 중요한 서류들을 찾느라 온 집을 뒤집어엎다시피 했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다가 정작 그럴 때가 되면 뭘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서류는 내 소관이 아니고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은행, 보험, 공증, 세무, 그 외 뭐가 뭔지 모를 골치 아픈 서류는 전부 아들이 관리하고 분류하고 정리한다. 내 문서라고 함은 나의 여닫이 책상 서랍, 서랍장, 서재 책상, 창가의 수납장, 열쇠로만 열 수 있는 궤짝 등에 따로 고이 숨겨놓은 하얀 봉투들을 말한..

"1920년대 상해"(4)

2020.6.21(일) 조선희, [세여자], 한겨레출판, 2017. 상해도 겨울은 제법 추웠다. 공기가 습해서 살갗을 오슬오슬 파고드는 추위였다. 밤에는 동지나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손발이 시렸다. 정숙은 시장에 나가 솜이 누벼진 중국저고리와 내의를 샀다. 아버지는 밤늦게 나다니지 말라 했지만 정숙은 주로 밤에 바빴다. 어학강좌와 강독모임이 모두 저녁 시간이었다. 프랑스조계 뒷골목의 강독모임에 두세 번 드나들면서 정숙은 모임의 정체를 파악했다. 거창한 명칭에 비해 내용은 빈약하지만 ‘고려공산당’이라는 정당이 최근 생겨났고 그 청년조직을 준비하는 공부모임이었다. 헌영이 우연히 마주친 정숙을 반가워할 만했다. 새로운 멤버 영입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목조건물 2층 비좁은 단칸방 한쪽 벽에 단행본과 잡지..

"1920년대 상해"(3)

2020.6.20(토) 조선희, [세여자], 한겨레출판, 2017. 1920년 가을, 허정숙이 도착한 며칠 뒤 상해역에는 통치마 저고리의 젊은 조선 여성 또 하나가 개찰구를 통과해 들어왔다. 혼자 상해로 오는 조선 유학생 중에 여자는 드물던 시절이었다. 커다란 짐가방을 들고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낯빛으로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대합실에서 한 남자가 반갑게 마중했다. “여이, 세죽 양!” 남자가 세죽의 가방을 받아 들며 말했다. “하숙집 잡아놨으니 일단 짐 풀고 영생학교 선배들 만나는 것은 내일 해도 늦지 않을 거 같소.” “일단 집으로 전보부터 쳐야겠어요. 전신국 어디있죠?” 세죽의 하숙은 프랑스조계였다. 마중 나왔던 영생학교 선배는 하숙방에 짐가방만 넣어주고는 바로 떠났다. 상해역부터 꽤 먼 길을 걸어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