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452

담양 소쇄원

박은영, [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 ], 서해문집, 2017. 담양 소쇄원 소쇄원은 3대에 걸쳐 조성한 별서다. 처음에는 소쇄정(지금의 대봉대)이라 불리는 작은 정자에서 시작했다. 약 500년 전 그때가 대략 1520년 경이다. 먼저 제월당을 짓고, 그 다음에 광풍각을 조성한다. 이어 두 아들이 광풍각 옆에 고암정사와 부훤당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며 칩거한다. 실제로 소쇄원은 손자 양천운 대에 가서야 완성된다. 소쇄원은 양산보의 외형인 면앙정 송순과 당시 담양부사였던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등의 후원으로 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소쇄원은 처사 양산보가 귀거래를 실천한 곳이고, 그 이상을 도원경에 두고 이를 공간에 실현하려고 한 원정이다. 후손에게 소쇄원을 그대로 지키라는 그의 뜻과 김인후의 ‘소..

로컬 식량 경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의 미래](최요한 옮김), 남해의봄날, 2018 ‘농업을 중심으로 한 로컬 식량 경제의 재건 방안’ Q: 땅에 기반한 경제 재건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경제 문제의 해법을 농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농업을 중심으로 한 로컬 식량 경제의 재건 방안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 주십시오. A: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산업화 때문에 생태계와 우리 사회에 발생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경제의 기본 원칙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우선 농업이 가장 중요한 부문인데 경제 정책이 농업을 좌우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생산하는 것 중에 모든 사람이 날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식량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

한국의 독자들에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의 미래](최요한 옮김), 남해의봄날, 2018 ‘한국의 독자들에게’ 세계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감소만으로도 무서운 일인데, 거기에 불안정한 금융, 위협받는 민주주의, 핵전쟁의 공포까지 겹치니 혼란스럽고 당황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도시 경제로 급하게 달려간 한국인들은 어쩌면 라다크인들과 비슷한 피해를 입은 것 같습니다. 나는 라다크인들이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우울한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더욱 희망적인 전망도 제시했습니다.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환경 사이의 더 건강한 관계를 재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습니..

‘소통의 유혹, 카페’

장수한, [깊고 진한 커피 이야기], 자음과모음, 2012. ‘소통의 유혹, 카페’ 카페는 커피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공간이지요. 게다가 카페는 그 시대의 음악이나 미술을 담는 그릇이고요. 그러나 카페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욕망, 그 소통의 유혹이 만든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커피는 공적 부문이 아니라 사적 부문에 침투해 사적인 음료로 기능했습니다. 사적인 대화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잖아요? 또 지배집단을 옹호할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카페는 커피를 소비하는 공간이면서 나아가 사적인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상이나 철학, 정치 담론을 생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럽에서 카페는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

‘이슬람의 검은 매혹, 유럽을 적시다’

장수한, [깊고 진한 커피 이야기], 자음과모음, 2012. ‘이슬람의 검은 매혹, 유럽을 적시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아라비카가 원산지입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예멘을 정복하게 되어 그곳에 커피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예멘은 에티오피아보다 커피 생산에 더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어요. 그래서 에티오피아에 자생하던 커피를 예멘에서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커피는 이제 오스만튀르크 제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초가 되면서 이미 아라비아에서는 커피 음용이 유용하냐 아니면 해로우냐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16세기 초에는 아라비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이미 마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만튀르크는 시리아와 예멘을 점령한 후 ..

좋은 걸 찾지 말고 안 좋은 걸 피하라

박진영, [무엇을 위해 살죠?], 은행나무, 2020. ”좋은 걸 찾지 말고 안 좋은 걸 피하라” 그래서 내가 새롭게 갖게 된 건강관리의 개념은 몸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있는 생명이 원래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처럼 몸에 좋은 걸 찾으려고 하지 말고 몸에 안 좋은 걸 피하는 것이 건강관리의 핵심인 것이다. 이전에 내가 쓰던 아토피와 비염의 치료 방법은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제였다. 이것들은 생명의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몸을 둔하게 만들어서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것이었다. 이들 질환은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적군을 공격해야 할 백혈구가 아군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새롭게 시도한 치료 방법은 피를..

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완성하라

박진영, [무엇을 위해 살죠?], 은행나무, 2020. “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완성하라” 시작했어도, 어느 시점에서는 작품을 머리로 진단해야 한다. 만일 모티프로 멜로디를 만들었다면, 그다음에는 트렌드 분석을 기반으로 그 멜로디에 어떤 리듬, 어떤 악기, 어떤 가사를 덧붙일지 머리로 완성해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트렌드는 대중의 트렌드와 자신의 트렌드이다. 대중의 트렌드를 분석한다는 것은 대중의 취향 변화를 읽는 것이고, 자신의 트렌드를 분석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요즘 어떤 리듬, 어떤 코드, 어떤 멜로디, 어떤 가사를 많이 썼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모티프는 분명히 가슴에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성향을 보인다. 따라서 오래 작품을 만들다 보면, 누구든지 무언가를 반복해서 즐겨 쓰고 있다는 ..

순례

성지순례라는 현상은 이미 그리스도 이전에도 있었다. 그리스와 소아시아에서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니며, 신의 치유를 체험할 수 있고 신의 명령을 신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들을 두루 찾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찾아갔다. 또한 아폴론의 신전들을 순례하며, 자신의 현세와 미래에 대한 교시, 일상에 대한 방편을 얻으려 했다. 사람들은 신들이 특정한 장소에서 특별한 효력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길을 떠나 고난을 감내하며, 기도와 고행을 통해 순례지의 성역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성인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서 밤을 지내고는 한다. 잠든 사이 하느님의 계시를 보거나 성인의 치유력을 나눠 받기를 기대한다. 종종 사람들은 성인의 유해나 그 무덤..

거닒

지속적인 걷기, 상념 없이 그저 자신을 맡기는 단조로운 움직임은 정화의 길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것을 떨쳐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적 소요, 나를 화나게 하고 내 속을 뒤집던 것이 고요해진다. 나는 내적 동요, 영혼의 쓰레기로부터 다 벗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통해 고요해지는 체험을 하는데, 침묵하며 앉아 있는 경우보다 더 고요해진다. 신경질적이며 성마른 사람들에게는 걷기, 거닒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유용하다. 그들은 걸을 때 온갖 것들에 더 쉽게 신경을 끊을 수 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모든 근심, 심지어는 질병까지 ‘걸으면서 떨치는’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걷기의 즐거움을 잊지 말지어다! 나는 매일 평안을 향해 걸으며 모든 질병에서 벗어난다. 내 최고의 사유들은 걸으면서 얻었..

우미미라이 도서관

조금주,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 도서출판 나무연필, 2017. 일본 가나자와 ‘우미미라이 도서관’ 일본의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의 주택가 한가운데에는 스펀지케이크 모양의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콘크리트 표현에 삼각 배열로 구멍이 뚫려 있고, 6000여 개의 원형 유리블록이 표면을 장식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외관의 이 건물은 2011년 개관한 가나자와 우미미라이 도서관이다. 설계는 일본인 건축가 구도 가즈미와 호리바 히로시가 맡았다. 두 건축가는 이용자에게 쾌적하고 편안한 독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전자책을 비롯한 디지털 자료들이 제공할 수 없는, 물성을 가진 책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편안하게 책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환경을 이곳에 구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