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452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 리듬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중앙북스, 2015.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 리듬’ 언젠가 한 음악 담당 기자로부터 “손열음 씨는 리듬감이 정말 독특해요. 다른 사람들하고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자랑 같긴 하지만 사실 언제부턴가는 그런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들으면 놀랄 이야기가 있다. 사실 어렸을 적의 나는, 내가 가진 음악적 재능들 중 리듬감이 제일 별로라고 느꼈다는 거다. 한마디로 내가 가장 자신 없어했던 항목이 바로 이 리듬감이었다. 이 약점을 비장의 무기로 만들기까지는 당연히 나의 노력들이 있었다. 조금은 재미있는.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내가 별로라고 느낀 스스로의 능력이 ‘박자 감각’이 아니었다는 거다. 리듬과 박자라는 두 개념은 자주 ..

그저 내 이야기 같은 곡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중앙북스, 2015. ‘그저 내 이야기 같은 곡’ 고백하자면, 처음엔 이 곡을 정말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모 음악캠프에서 같은 방을 썼던 대학생 언니가 “너는 무슨 곡을 제일 좋아해?” 하고 질문했을 때 주저 없이 이 곡을 대기도 했었으니. 내 대답을 들은 언니가 “난 그런데 협주곡 3번이 더 좋아”라고 했고, 그 곡을 아직 몰랐던 나는 “이 곡보다 더 좋은 음악도 있을 수가 있어요?” 했다. 그러나 막상 스무 살을 넘겨 스무 곡이 넘는 협주곡을 배운 상태가 되었는데도, 이 곡은 ‘아직’이었다. 그 겨울엔 알지도 못했던 협주곡 3번을 배우게 되었을 때까지도 .... 아무 의도도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글쎄... 따지고 보면 내가 다닌 한국예술종합학교 피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편지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중앙북스, 201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편지' 환상. 영어로는 fantasy, 독어로는 Phantasie, 불어로는 fantaisie라고 쓴다. 그런데 이 곡은 이들 중 무엇도 아닌 다른 철자를 쓴다. 슈만의 피아노곡, 다. 우리나라 말로는 ‘환상곡’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그래서 로베르트 슈만이 남긴 고유명사다. 어느 날 그는 베토벤 기념비의 건립 기금을 마련하려는 동료 프란츠 리스트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았다. 맨 처음 그가 작곡하고자 했던 것은 ‘소나타’였다. 짧은 ‘성격소품’들을 묶은 모음곡을 주로 쓰던 그가 3악장 형식의 소나타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고전 소나타의 대가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막상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2004년 8월 30일 여름안거 해제 법정, [일기일회], 문학의 숲, 2009 그가 수첩에 적어 놓은 행복의 비결은 이 밖에도 더 있지만, 장황한 것 같아서 하나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한번은 아프리카에서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가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 차를 빼앗깁니다. 강도들은 의사 일행을 지하실에 가두고 어떻게 처리할까 옥신각신합니다. 그런데 강도의 우두머리가 의사의 몸을 수색하다 주머니에서 행복의 비결을 적은 쪽지를 보고 의사 일행을 풀어 줍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기적입니다. 우리는 늘 많은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

'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좋은 날’ 2006년 8월 19일 여름안거 해제 법정, [일기일회], 문학의 숲, 2009 지난 여름, 제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거웠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침저녁으로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묵묵히 앉아 있던 그 시간입니다. 책 읽고 밖에 나가서 일하는 시간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개울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가장 기쁜 시간입니다. 이것을 선열위식이라고 하는데, 선의 기쁨으로 밥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불자들은 그런 수행을 꼭 안거 기간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불교 수행자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런 자기 충전을 통해 이 험난한 세상을 무난히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자기 충전의 시간이 없다면 늘 중생 놀음, ..

'말거간 전' (2)

박지원,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홍기문 옮김), 보리, 2004. 박지원(1737~1805): 노론 명문가인 반남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았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며 학문을 닦았다. 홍국영의 세도정치를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로 들어가 살며, ‘연암’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쉰 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 들을 지냈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문학, 철학, 사회 사상, 행정, 과학, 음악 따위 두루 학식이 깊어 뛰어난 글을 많이 써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전’ ‘범의 꾸중’을 비롯한 단편 소설 십여 편, 시 사십여 수, 농업과 토지 문제..

'말거간 전' (1)

박지원,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홍기문 옮김), 보리, 2004. 박지원(1737~1805): 노론 명문가인 반남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았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며 학문을 닦았다. 홍국영의 세도정치를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로 들어가 살며, ‘연암’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쉰 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 들을 지냈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문학, 철학, 사회 사상, 행정, 과학, 음악 따위 두루 학식이 깊어 뛰어난 글을 많이 써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전’ ‘범의 꾸중’을 비롯한 단편 소설 십여 편, 시 사십여 수, 농업과 토지 문제..

'민 노인전' (2)

박지원,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홍기문 옮김), 보리, 2004. 박지원(1737~1805): 노론 명문가인 반남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았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며 학문을 닦았다. 홍국영의 세도정치를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로 들어가 살며, ‘연암’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쉰 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 등을 지냈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문학, 철학, 사회 사상, 행정, 과학, 음악 따위 두루 학식이 깊어 뛰어난 글을 많이 써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전’ ‘범의 꾸중’을 비롯한 단편 소설 십여 편, 시 사십여 수, 농업과 토지 문제..

'민 노인전' (1)

박지원,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홍기문 옮김), 보리, 2004. 박지원(1737~1805): 노론 명문가인 반남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았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며 학문을 닦았다. 홍국영의 세도정치를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로 들어가 살며, ‘연암’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쉰 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 등을 지냈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문학, 철학, 사회 사상, 행정, 과학, 음악 따위 두루 학식이 깊어 뛰어난 글을 많이 써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전’ ‘범의 꾸중’을 비롯한 단편 소설 십여 편, 시 사십여 수, 농업과 토지 문제..

돼지 구이를 논함 (2)

2020.7.19(일) 찰스 램, [찰스 램 수필선](김기철 번역), 문예출판사, 1976. 찰스 램(Charles Lamb, 1775~1834) : 영국의 수필가이자 시인, 필명 엘리아. [엘리아 수필집]은 영국 수필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돼지 구이를 논함”(2) 결국 두 부자는 감시를 받게 되고, 그 무서운 비밀이 발각되어서, 그때만 해도 하찮은 규모의 도읍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소환되었다. 증거가 제시되고, 그 눈총을 받는 고기 자체도 법정에 제출되어 판결이 막 내려지려고 하는데, 바로 그때에 수석배심원이 범인이 고발당하게 만든 바로 그 불에 탄 돼지고기를 조금 배심원석에 건네줄 것을 요청했다. 수석배심원들도 그것을 만져보고, 그 밖의 다른 배심원들도 모두 그것을 만져보았다. 그런데 보보와 그..